[기고] 신입이 사라진 자리
페이지 정보

본문

얼마 전 창원에서 만난 스물여섯 청년은 입사 지원서를 마흔 번 넘게 썼다고 했다. 면접까지 간 곳은 두 곳. 두 곳 모두 실무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단다. 청년이 되물었다. “신입에게 경력을 요구하면 저는 그걸 어디서 쌓아야 합니까?” 문 앞에는 신입이라고 써 놓고 문턱은 일을 해본 사람만 넘게 해 놓은 셈이다.
이를 청년 개인의 준비 부족으로 돌리기는 쉽다. 자격증을 더 따고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하면 어른의 책임은 금세 가벼워진다. 그러나 마흔 번의 지원서는 성실이 모자란 흔적이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스펙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신입에서 숙련자로 길러내던 사다리 문제다. 첫 칸이 빠진 사다리를 두고 더 높이 오르라고 재촉할 수는 없다.
채용시장 수치도 이를 보여준다. 채용 플랫폼 캐치 집계를 보면 지난해 대기업 정규직 신입 공고는 전년보다 43% 줄었다. 한국은행 분석에서는 최근 3년간 감소한 청년 일자리의 98.6%가 인공지능(AI)과 수행 업무가 겹치는 업종에서 나타났다. 물론 AI만이 원인은 아니다. 경기 둔화와 경력직 선호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신입이 맡던 정형 업무를 AI가 빠르게 대신하는 흐름은 분명하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 신규채용 실태조사에서는 응답 기업의 67.6%가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꼽았다. 경험 있는 사람을 원하면서도 경험을 쌓을 자리는 줄어드는 것, 청년이 마주한 현실은 바로 이 모순이다.
교육과 사람 성장을 다루는 현장에서 30년을 보냈다. 예전 신입은 서툴렀지만 선배 곁에서 일을 배우며 조금씩 자기 몫을 해냈다. 고객에게 왜 먼저 전화를 걸어야 하는지,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알려야 하는지, 실수한 뒤 어떻게 다시 신뢰를 회복하는지를 몸으로 익혔다. AI는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고객 표정이 왜 달라졌는지, 지금 이 결정이 맞는지까지 대신 판단해 주지는 않는다. 기술이 일을 대신할수록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더 중요해진다.
이 변화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지방이다. 2026년 5월 경남에서는 20~24세 청년 531명이 순유출됐다. 사람은 일자리만 찾아 움직이지 않는다.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향한다. 지역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신입을 체계적으로 키울 여력이 부족하다. 청년이 떠나는 현실과 기업이 사람을 키우기 어려운 현실은 결국 같은 문제에서 비롯된다. 지역은 사람만 잃는 것이 아니라 미래 숙련자까지 함께 잃고 있는 셈이다.
결국 지역이 해야 할 일은 청년을 뽑는 기업보다 청년을 키우는 기업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다. 신입을 가르치는 비용을 기업 혼자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현장 멘토에 대한 보상과 교육·훈련 설계 비용을 함께 지원해야 한다. 청년 교육도 AI를 사용하는 법을 넘어 AI와 함께 질문하고 검증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채용지원금 역시 몇 명을 채용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사람을 길러냈는지를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경력자를 원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완성된 사람만 찾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완성될 수 없다. 기술은 일을 대신할 수 있어도 사람 성장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신입이 사라진 사회는 결국 미래가 사라지는 사회다. 경남의 내일은 사람을 뽑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기업에서 시작된다.
/홍순철 ㈜이플립 대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